B L A N K – 노영훈개인전
2020년 7월 4일 ~ 8월 16일
2020년 7월 4일(토) 부터 8월 16일(일)까지
포네티브 스페이스 기획초대전
노영훈 작가의
[B L A N K] 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BLANK>전은 우연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이점으로 하나의 사건을 일으킨다는 생각으로부터 구상된 전시다.
에피쿠로스(Epikuros)와 루크레티우스(Lucretius)가 언급한 평행한 원자가 우연한 어떤 힘에 의해 빗겨나게 되며, 빗겨난 원자와 직진하는 원자의 궤적이 우발적으로 만나게 되어 사건이 발생하며, 이것을 통해 형태(Forme)가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질 들뢰즈의 잠재적 우연성의 사건 개념을 통해 특이점이 세상을 관통하며 어떤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생성하고 역사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이점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사르트르의 본질적인 존재로써 우연(Conteingence)과 맞닥뜨린 인간처럼 세상의 부조리에 직면하고 있다.
<BLANK>전에서는 전시장을 고려하여 제작된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전시장은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나뉘어져 상부구조에서는 모리스 팔코네의 <앉아있는 큐피드>(1757)의 얼굴조각을 부분적으로 차용한 조각 <천사>가 입구에 배치되어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오마주>라는 피노키오 형상의 관절인형과 지하층을 응시하고 있다. 팔코네의 큐피드는 에로스적 본능과 죽음을 추구하는 성적 본능에 관한 이중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주목하는 의미는 모든 부조리에 대한 침묵이라는 메시지를 조각상의 뒤편에 반사된 원형 금속거울에 비친 관람객에게 되묻고 있다.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오마주>는 작가의 자화상이자 우리시대 인간들에 대한 자전적 모습을 그린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차별에 관한 항의를 주제로 구상된 작업인데, 차별을 통한 또 다른 차별의 뫼비우스의 띠 속에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따라서 피노키오 형상은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과 실천적 관계를 맺고 행동할 때 아직 쓰이지 않은 세상의 빈 공간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노키오의 잘려진 코가 조형적인 크기 변화를 통해 지하층의 <학살>이라는 작품과 연결된다.

<잃어버린 신발>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신발조형물들이 헝가리의 다뉴브 강가를 향해 설치된 것처럼 반사된 원을 향해 배치되어 세상의 차별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추모작품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작품 <학살>에서는 금속거울로 된 글자인 ‘Massacre’는 우연히 학살과 마주한 관객이 스스로를 서명자 혹은 방관자의 양가적 위치에 둠으로써 현재 진행형인 세상의 여러 학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람객은 색연필의 끝에 걸쳐져 있는 반짝이는 마침표의 표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할 때 글자의 표면을 비추고 있던 빛을 가리게 되어 글자를 밝히고 있는 빛이 사라지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채우기-비우기, 밝히기-가리기의 대립적인 양상을 띤 아이러니한 주체가 된다. 또한 프로이드의 말처럼 문자로써의 <Massacre>는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로부터 부재한 목소리가 되어 신경증적이거나 집단적 망상화 된 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유령이 된다. 따라서 작품의 면전에서 우리는 그저 무기력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텅 빈 주체가 된다.

<Punctum II>는 나르키소스의 연못을 상기시키는데, 작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금속 거울에 투영된 모습이며, 흔들리는 거울이미지는 욕망하는 현대인들의 현기증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피노키오 형상은 지상층에서 지하층으로 뛰어드는 나르키소스의 모습으로 의미의 복선을 만들며, <BLANK>전은 세상이라는 빈 여백 속에 작품이라는 사건을 던져 인간의 실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연락처: 노영훈(010-7525-0614)
자료요청: e-gamg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