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겨져, 나온 – 서은애 동양화전 –

2018년 10월 6일 ~ 2018년 10월 28일

2018년10월6일 ~ 10월28일

“예술이란 무엇인가”

고백하건데 이 커다란 질문 앞에 우매한 나는 답을 내놓을 역량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너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예술은 고백이고 바램이며 위로이고 정화(淨化)이다.

 

작년은 내게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였다.

안타까움으로 부대꼈던 마음은 여과 없이 그림에 나타났다.

그 동안 익숙했던 고풍스런 은유의 방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던 감정들은

노골적이며 격해지고 아프게 형상화 되었다.

뱉어내고 싶었고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모래먼지 날리는 바닥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니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내 마음이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관계 속에 살면서

관계 속에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또 관계 속에서 위로받기를 원하는 모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풀도 나무도 새도 꽃도 바람도 서로에게 아무 것도 바라고 기대하지 않으며

그저 생겨났다 사라질 뿐이다.

시작을 기뻐하지도 소멸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목소리 높이던 그림들은 다시 차분히 가라앉고 있다.

더 단순해지고 더 덤덤해지길 바란다.

 

지난 전시에서 거대한 장막처럼 펼쳐져 있던 벽들과 굳게 잠겼던 문들을

그것들이 속해있던 건물이라는 인위적인 육중한 구조로부터 분리시킨다.

 

뜯겨져 나온 벽과 문들은 이제 더 이상 건물의 질서에 복속할 필요가 없다.

무언가를 힘들게 머리에, 어깨에 짊어지고 지탱할 의무도

누군가에 의해 열리고 닫히며 부셔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뜯겨져 나온 모든 것들은 상실인 동시에 자유이다.

완결된 구조에서 뜯겨져 나옴으로 인해 원래의 기능은 상실되나

역으로 뜯겨져 나옴으로 인해 아무런 목적 없이

그것 자체로 새롭게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겨난다.

용도를 상실한 비애보다는 속박됨 없는 자유로움이 더 크다.

긴 시간 묶여있던 하나의 기능, 하나의 목적.

그 강제성으로부터 홀연히 벗어나면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 충분해지는 것이다.

 

뜯겨져 나온 모든 것들에게 깊은 경의를 바친다.

am 11:00-pm 6:00
매주 월요일 휴관